2014년 8월4일 국내 첫 상업원전인 고리1호기를 폐로하기로 결정했다면 지역 주민들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은 언제쯤일까. 42년 된 고리1호기가 완전히 해체되는 것은 짧아도(즉시해체 시) 15년, 길면(지연해체 시) 50~60년 후의 일이다. 폐로를 결정해도 원전은 꽤 긴 시간 방치되는 것이다.

한국은 현재 원전 폐로를 위한 법제도 없고, 해체 기술도 부족하고, 막대한 해체 비용도 마련하지 못했으며 폐기물을 처리할 부지도 선정돼 있지 않다. 고리1호기의 1차 수명연장(10년)이 끝나는 2017년 다시 고비를 맞지만, 폐로의 선결조건은 모두 원점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한창 원전 폐로가 진행 중인 미국·독일·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폐로에 드는 시간도 더 길어지고 고비고비마다 준비 안된 갈등이 표출될 수 있다.

▲ 핵심 절차인 '부지 처리' 주민과 정부 갈등 수반
법제는 이제 걸음마 단계… 기술 절반 이상 보유 못해


■ 원전 부지의 처리 방식 결정이 급선무

새로 원전을 짓는 것보다 해체·폐로 작업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작업도 지난하고, 사회적 갈등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원전 부지를 어떻게 복원할지 결정하는 문제는 새 방폐장·원전 부지를 선정하는 것 이상의 갈등을 촉발시킬 수도 있다. 원전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 믿는 주민들과 효율성·경제성을 앞세워 다시 원전 관련 시설 부지로 사용하려는 정부나 원전사업자의 생각이 곧잘 충돌하는 것이다.

이 해법을 찾는 공론화 과정에서는 고리1호기를 지연해체할지, 즉시해체할지 기술적 문제도 정해야 한다. 수십년간 원자로를 봉인해두는 지연해체는 코발트같이 반감기가 짧은 방사성물질이 줄어들고, 작업자들의 피폭 위험도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내부를 잘 아는 이들이 해체 작업에 참여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반대로 5년 정도 준비 작업(사용후 연료봉 해체와 격납용기 제염 등)을 거쳐 즉시해체를 할 경우엔 작업자의 피폭 위험이 그만큼 높아진다. 해체 노동자의 피폭을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지도 '사회적 합의'를 할 사안이다.

■ 폐로 관련 법제 부실

노후 원전의 폐로·해체를 하려면 법 정비부터 서둘러야 한다. 당장 원전을 폐로하려고 해도 한국에는 근거 법률이 없어 실질적인 작업에 들어갈 수 없다. 폐로·해체의 개념부터 해체 방법, 방사성폐기물의 처리 방법 등이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규정돼야 하는 것이다.

원자력안전법에는 발전용 원자로운영자(한국수력원자력)가 원전 해체 때 해체 방법과 공사 일정, 방사성물질 제거·처분 방법 등을 포함한 계획서를 작성해 원전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하지만 구체적 절차·기준·방법 등을 담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은 없다. 원안위가 현재 방사성물질을 제거하는 '제염'의 기준과 폐로 방법 등 관련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 국내 기술로 원자로 해체 못해

원전 부지 복원·활용 방식과 법 정비가 이뤄져도 한국은 폐로까지 또 하나의 큰 벽에 부딪혀 있다. 노후 원전을 안전하게 해체·폐로할 때 사용할 핵심 기술 중 한국이 보유한 것은 아직 17개뿐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가진 기술로는 방사성물질을 제거하는 제염·해체는 가능하지만, 원자로 압력용기를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절단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압력용기 절단은 폐로의 핵심 단계다. 미래창조과학부는 한국의 원자로 절단 기술 수준을 미국·일본·독일 기술의 60% 정도로 보고 있다.

폐로·해체 기술을 개발해도 고리1호기에 바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자력연구원 문제권 제염해체연구부장은 "모형 원자로 같은 실증 시설에서 기술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시험한 뒤 현장에 투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현재 원자로 실증 시설을 건설하기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 막대한 비용 마련도 과제

고리1호기 폐로·해체를 정상적으로 진행할 재원은 마련돼 있지 않다. 방사성폐기물관리법에 따라 한수원은 해체 비용을 적립할 의무가 있지만, 현금이 아닌 장부상 부채로만 기록해 놓고 있다. 2012년 정부가 추산한 원자로 1기 해체 비용은 6033억원이다. 하지만 여기에 빠져 있는 중저준위 폐기물과 사용후 핵연료 처분비, 물가 상승분을 포함하면 원전 1기에 직간접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폐기물 처리비도 빠르게 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 허가형 사업평가관은 "2013년 기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비는 드럼당 단가로 1193만원"이라며 "2010년에 산정한 736만원보다 3년 새 62%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사용후 핵연료 처분 비용은 처분 방식과 처분장 입지가 결정되지 않아 정확한 비용 추산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발전은 우라늄이 핵분열할 때 생기는 열에너지로 물을 끓여 수증기를 만들고 이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얻는 것이다. 원자로 용기 안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우라늄 핵분열을 적절히 제어하면 대량의 전기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우라늄 1g이 분열할 때 생기는 에너지는 석탄 3t이 연소할 때 생기는 에너지와 맞먹는다.

우라늄 연쇄 핵분열을 처음 발견한 과학자는 엔리코 페르미다. 그는 1942년 12월2일 미국 시카고대 운동장 지하에 설치한 '시카고파일-1'(CP-1)이라는 인류 최초 원자로에서 실험에 성공했다. 흑연을 쌓아올린 게 원자핵분열을 제어할 수 있는 비밀이었다. 과학적으로 큰 성취였지만 이 기술은 원자폭탄 제조의 기반이 됐다. 12년 뒤 1954년에는 구소련에서 세계 최초의 원전이 가동됐다. 체르노빌 사고(1986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2011년)같이 원자로에서 방사선이 유출되면 돌이킬 수 없는 대형사고를 일으킨다. 원전은 한번 가동되면 최소 30년 이상 운전하며, 내부 주요 부품은 방사선에 노출돼 고준위 방사성물질로 변한다.

 

 

 

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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